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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의 본질/지리소설 메르카토르

제22화 — 모래 한 알의 기억

by 덕지덕지 2026. 5. 21.

제22화 — 모래 한 알의 기억

— 1 —

소율의 안내로 일행이 시장 입구를 빠져나왔다. 안개가 잦아들고 새벽이 깊어져 있었다.

다온이 부두에서 어선을 다듬은 채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선의 노란 돛이 풀려 있었고, 노가 가지런히 옆에 놓여 있었다. 다온이 짧게 인사를 건네고 어선에 자리를 권했다.

"모래섬까지 한 시간 거리예요. 강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KA는요?"

메르가 물었다.

"모래섬은 사람의 발만 받아들이는 자리예요. 짐승의 발은 받지 않고요. KA가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메르가 부둣가 옆 KA를 짧게 보았다. KA의 외피 안쪽에서 현우가 가는 음운을 보냈다. 자기들이 부두에 머무르며 일행을 기다리겠다는 응답이었다. 본체와 길동무 짐승이 부두에 남고, 사람 셋과 비익조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자리였다.

다온이 노를 저었다. 어선이 한울 부두를 떠나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울 앞 바다는 짠 바다였는데, 강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물의 색이 옮겨 갔다. 짠 바다의 옅은 붉은빛이 강물의 옅은 갈색으로. 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자 옛 한국 시골의 강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양옆에 갈대가 길게 늘어서 있었고, 갈대 안쪽에서 새의 음운이 작게 새어 나왔다. 사람의 음운보다 부드럽고, 사람의 호흡보다 가지런한 음운이었다.

사람이 자기 도시를 떠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자기 일상을 떠나 어머니의 안쪽으로 다시 거슬러 들어가는 일과 닮아 있다. 강이 사람을 어머니 쪽으로 안내하는 자리라는 옛 풀이가, 그 사실에서 새어 나왔다.

— 2 —

강 한가운데에 작은 모래섬이 보였다. 사람 키 정도 솟은 작은 섬. 흰빛에 가까운 모래가 강물 위에 동그란 모양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섬 위에 작은 나무 하나, 그 옆에 옛 사공의 작은 집.

어선이 모래섬 옆에 닿았다. 일행이 내렸다. 다온이 어선을 모래섬 가장자리에 묶고, 자기는 어선 옆에 머무르겠다고 짧게 짚어 주었다. 모래섬 안쪽에는 세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집 앞에서 60대 여인이 일행을 맞이했다. 옅은 갈색 옷에 가는 짚으로 짠 모자를 머리에 얹었다. 양손이 거칠었지만, 다온의 손과 또 다른 결의 거침이었다. 다온의 손이 노를 다듬는 손이었다면, 이 여인의 손은 모래 알갱이를 평생 짚어 온 손이었다.

"제 이름은 '여울'이에요. 강의 흐름이라는 뜻입니다. 모래섬의 옛 사공이고요. 토르 분 어머님의 옛 친구입니다."

모래섬의 사공 여울이 자기 이름을 건넸다.

토르의 호흡이 짧게 멎었다. 솔, 단, 한라, 이라가 메르 어머니의 친구였고, 누리·다온이 그 어머니들의 다음 세대였다면, 여울은 토르 어머니의 친구로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저희 어머니를 아세요?"

"네. 50년 전 그 분이 저희 모래섬에서 사흘을 머무르고 가셨어요. 그때 어머님께서 저에게 부탁을 새겨 두고 가셨고요. 어머님과 저 사이에 평생의 약속이 있었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어떤 분이셨어요?"

토르가 물었다.

여울이 잠시 멎었다. 옛 친구의 모양을 자기 안쪽에서 다시 꺼내 보는 짧은 멎음이었다.

"음운이 굵으셨어요. 관흉국 사람답게 굵으셨고요. 그러나 굵은 음운 안쪽에 가는 다정함이 흐르는 분이셨어요. 마을 큰어른의 음운과 닮은 결이 있으셨고요. 토르 분께서도 그 음운을 그대로 가지고 계세요. 처음 뵙는데 어머님이 옆에 와 계신 줄 알았어요."

토르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자기 안쪽에서 어머니의 어떤 가닥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 그 가닥이 평생 자기를 따라온 가닥이라는 사실. 두 살에 보낸 어머니가 자기 음운 안쪽에 50년을 같이 살아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울의 말로 처음 또렷이 받아들였다.

"그 분께서 무엇을 부탁하고 가셨어요?"

"두 가지였어요. 첫째는 모래섬에 토르 분의 두 살 자취를 가만히 새겨 두라고요. 두 살의 토르 분께서 어머니의 옷자락을 마지막으로 잡으셨던 그 자취. 어머님께서 그 자취를 한 평생 가슴에 두고 사셨어요."

토르의 흰빛과 검은빛이 가슴 안쪽에서 두 가닥으로 떨었다. 자기 두 살 자취가 50년 동안 모래섬에 자기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사실. 어머니가 그 자취를 자기 가슴에 두고 사신 50년의 무게가 잠깐 자기 어깨 위로 옮겨 왔다.

"둘째 부탁은요?"

"토르 분께서 도착하시면, 그 자취를 직접 받아 가실지 가만히 두고 가실지를 토르 분께서 결정하시도록 해 달라고요. 어머님께서 그 결정을 토르 분 손에 맡기고 가셨어요."

— 3 —

여울이 일행을 모래섬의 안쪽으로 안내했다. 작은 나무 옆에 모래밭이 동그란 모양으로 펼쳐져 있었고, 그 모래밭 가운데에 사람 하나가 서 있었다.

토르의 호흡이 멎었다.

두 살의 자기였다.

키가 작고, 머리가 짧고, 옅은 갈색 옷을 입었고, 손에 어머니의 옷자락 끝을 쥔 모양. 그러나 옷자락의 다른 끝이 비어 있었다. 어머니의 모양이 그 옷자락 너머로 사라지고 없었다. 두 살의 자기가 어머니가 떠나신 그 직후의 자세로 모래밭 가운데에 서 있었다.

두 살의 토르가 어른 토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옅은 떨림의 음운이었다.

"엄마가 어디 갔어요."

어른 토르의 마음이 짙게 가라앉았다.

"엄마가 가셨어요. 엄마 옷자락만 남았어요. 손에 잡혔는데, 옷자락만 남았어요."

두 살의 자기가 자기에게 자기 일상을 일러주는 자리. 자기가 평생 입에 담지 못하고 가슴에 두고 살아온 자락의 일상.

"옆에 있어 주세요. 옷자락 다시 잡아 주세요."

어른 토르의 흰빛과 검은빛이 가슴 안쪽에서 떨었다. 두 살 자기에게 어머니를 다시 돌려주고 싶은 50년의 갈망이 잠깐 솟아올랐다. 그러나 솟아오른 그 자리에 단오 선생님이 새겨 주신 시계 가락이 박자에 맞춰 응답했다. 시간이 흐르는 자기의 박자가 자기를 받쳐 들었다. 16화 화산 안쪽에서 단오 선생님이 어른 토르의 가슴에 새겨 주신 가락의 무게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응답하고 있었다.

메르가 토르의 왼쪽 손을 잡았다. 서연이 토르의 오른쪽 손을 잡았다. 21화 시장에서 토르와 서연이 메르의 양손을 잡았던 자세 그대로. 같은 박자에, 같은 무게로. 자매와 친구의 양손이 토르의 양손에 닿았다.

여울이 옅은 음운을 보탰다.

"저 아이는 가짜예요, 토르 분. 진짜 두 살의 토르 분께서는 어머님께서 옷자락을 거두고 가신 그 자리에서 울지 않으셨어요. 두 살의 아이가 그 자리에서 울지 않은 일이 평생 견딤의 첫 자락이었어요. 어머님께서 그 견딤을 알아보고 가셨고요."

— 4 —

어른 토르가 작게 입을 열었다.

"두 살의 나야."

가짜 두 살의 토르가 어른 토르를 보았다.

"너는 그 자리에서 울지 않았어. 어머니의 옷자락이 너의 손에서 거두어졌을 때, 너는 그 옷자락을 다시 잡지 않았어. 그 견딤이 너를 50년 살게 한 첫 자락이야. 너의 권유는 거절할게. 너 안쪽에 진짜 두 살의 자락이 있고, 그 자락은 받아 가지만."

가짜의 입가가 잠시 멎었다.

어른 토르가 가슴 위에 손바닥을 댔다. 흰빛과 검은빛이 손바닥 너머로 흘러나왔다. 메르가 외투에서 검은 막대를 꺼냈다. 서연이 자기 가슴팍에 손바닥을 댔다.

"같은 박자에."

세 사람의 음운이 모였다.

막대의 일곱 가닥, 토르의 두 빛, 서연의 어머니 가락이 가짜 두 살 토르의 모양 가운데에서 박자에 맞춰 모였다. 가짜의 모양이 가는 가닥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흩어지면서 두 살의 토르가 마지막에 어른 토르 쪽으로 손을 옅게 들었다. 어머니의 옷자락을 놓아준 그 자세 그대로. 가짜였지만, 그 손짓은 두 살의 자기가 어른이 된 자기에게 보내는 인사이기도 했다.

가짜가 모래 한 줌으로 흩어졌다.

모래밭 가운데에 작은 알갱이 하나가 가는 빛으로 떨었다. 모래섬의 모래 알갱이에 사람의 기억이 새겨진다는 다온의 풀이가 또렷이 짚였다. 가짜로 흩어진 두 살 토르의 자취가 모래 알갱이의 기억으로 모래섬에 자리를 잡았다.

여울이 알갱이 옆으로 와서 짚어 들었다. 옅은 노란 알갱이였다.

"어머님께서 두고 가신 토르 분의 두 살 자취예요. 가만히 두고 가실 수도 있고, 받아 가실 수도 있어요."

여울이 알갱이를 토르의 손바닥 위에 옮겨 주었다.

토르가 알갱이를 잠시 손바닥에 두고 들여다보았다. 두 살의 자기 자락이 알갱이 안쪽에서 가는 빛으로 흐르고 있었다. 자기가 어머니의 옷자락을 마지막으로 잡았던 그 자취.

"받아 갈게요."

토르가 알갱이를 외투 안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어머니가 50년 전 자기에게 남겨 두신 첫 짐이었다.

셋째 갈래의 둘째 자리가 닫혔다. 모래밭의 가락이 박자에 맞춰 가지런해졌다.

여울이 강의 안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셋째 갈래의 마지막 자리가 강을 더 거슬러 올라간 곳에 있어요. 사라진 도시의 옛 종탑이고요. 다온이 거기까지 어선으로 안내해 드릴 거예요."

"감사합니다, 여울 선생님."

"한 가지 더요. 종탑의 종이 50년 동안 잠들어 있어요. 토르 분께서 받아 가신 모래 알갱이가 종을 깨우는 열쇠예요. 어머님께서 그 결정을 토르 분 손에 맡기고 가신 까닭이 거기에 있고요."

토르가 짧게 끄덕였다. 어머니의 50년 전 부탁이 한 갈래씩 자기 손으로 옮겨 오고 있었다.

하늘에 별 아홉 개가 줄로 늘어선 채 일행의 등 위에 머물러 있었다. 셋째 갈래의 두 자리가 닫혔고, 마지막 자리가 남아 있었다. 그 자리가 닫히면 별 한 눈이 더 닫힐 것이었다.

토르의 외투 안주머니에 새 짐이 들어와 있었다. 두 살 자기의 자취가 담긴 모래 알갱이. 짐이 늘었지만, 그 짐은 자기 안쪽 가장 깊은 곳에 50년 동안 잠들어 있던 자기 자락을 손에 받아 든 짐이었다. 사람이 자기의 가장 옛 자락을 손바닥에 놓아 보는 일은 평생 한두 번 오는 자리고, 토르가 그 자리에 처음 도달해 있었다.

어선이 강을 더 거슬러 올라갈 준비를 했다. 다온이 노를 받쳐 들었다. 일행이 어선에 다시 올라탔다. 여울이 모래섬에서 짧게 손을 흔들었다.

(2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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