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세상속 어딘가에 묻혀 있을, 우주 어딘가에 잠자고 있을, 지구 어딘가에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숨겨진 보물들을 같이 찾아봐요!
지리학자의 본질/지리소설 the 천하도

the 천하도 - 제1화 향정의 그림자

by 덕지덕지 2026. 5. 6.

THE 천하도

第一話 ▸ 향정의 그림자

— 2032년, 다섯 번째 봄.

"야~! 천강아~ 밥 먹으러 가자!"

4교시가 끝나는 종이 학교 건물 전체를 휩쓸고 지나간 직후, 옆 분단의 재준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중학교 때부터 함께였던, 이 학교에서 내가 가진 유일한 친구다.

고등학교에 올라온 이후 수업 시간이 45분에서 50분으로 늘었다. 5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5분 동안 한 단원을 통째로 끝내버리는 선생님도 있다. 사람의 능력은 무한한 것 같다. 정말로… 아니, 무서운 것 같다.

벌써 5월. 입학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4교시 세계지리 시간만큼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지리 선생님은 지도 그리는 것이 취미인 분인데, 본인이 즐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학생들 모두가 함께 즐겨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다. 노르웨이의 피오르 해안선과 뉴질랜드 남섬의 들쭉날쭉한 굴곡을 1픽셀 단위까지 모사하라고 시킨다. 아이패드 보조배터리는 필수. 한 번이라도 빠뜨리고 등교한 날엔 그날의 영혼이 화면 정전과 함께 산화한다.

"오늘 메뉴가 뭐라냐?"

"오징어튀김에 오징어국."

"…학교 지하에 갑오징어 양식장이라도 있는 건가."

"맛은 그럭저럭 괜찮아. 가자, 임마. 어차피 급식 국물 맛은 재료랑 별로 상관 없잖아."

하긴, 그건 그렇다. 학교 식당의 국물은 재료가 무엇이건 — 멸치든, 다시마든, 갑오징어든 — 결국 비슷한 맛으로 수렴한다. 마치 모든 강이 결국 바다로 흘러들 듯, 식판에 올려진 모든 국물은 같은 미지근한 짠맛으로 도착한다.

5교시 ▸ 기하와 벡터

식당은 학교 건물 지하 1층에 있다. 우리 향정고등학교는 총 5층,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래쪽이 더 넓게 벌어진 H자 모양을 하고 있다. 한 학년에 10반, 반당 15~20명. 1830년 개교. 200년이 다 되어가는 건물은 1~2년 안에 재건축 이야기가 도는 모양이다. 제발 내가 졸업한 다음에 부수면 좋겠는데, 그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오징어튀김이다!"

재준의 걸음이 식당 앞에서 부쩍 빨라졌다. 배식줄에 막 합류했을 때, 녀석이 내게 하이톤으로 속삭였다. 그 표정을 본 순간, 나는 살짝 두려워졌다. 한 숟갈 뜨기 전에 20초 동안 썰을 푸는 녀석의 습관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녀석은 이야기보따리를 한가득 채워 온 듯한 표정이었다.

'아직 정리할 거리들이 남았는데… 재준 녀석이랑 점심 먹을 때마다 5교시 수업에 초치기 분치기… 에고….'

"어이~ 여기 여기~"

녀석은 이미 식당 한가운데 빈 자리에 자리를 잡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한 모금 삼키고 자리에 앉았다. 식판 위 오징어튀김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근데 천강아, 어제 도서관에서 들은 얘긴데 말이야. 우리 학교 200년 됐잖아? 그게 그냥 200년이 아니라더라고."

"…뭐가."

"왜 1830년에 세워졌느냐, 그게 의문이라는 거지. 그 시절에 한반도에 무슨 일이 있어서 학교가 세워졌겠냐? 1830년이면 흥선대원군이 열한 살이야. 무슨 학교를 세워?"

"…야,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먹어라. 종 친다."

하지만 녀석의 말은 묘하게 머릿속 한구석에 남았다. 1830년. 그 해에 무슨 일이 있었지? 검색해 보면 나온다. 9월 15일에 세계 최초의 증기기관차가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잇는 철도 위를 달렸고, 12월 14일에 시몬 볼리바르가 태어났다. 한반도에선… 별다른 기록이 없다. 그런 평범한 해에, 누군가는 향정 땅에 학교를 세웠다.

왜?

딩—동—.

"종 친다! 튀어!"

"가자!"

수학 선생님은 시간을 칼같이 지킨다. 교무실에서 수학교실까지의 수직-수평 거리, 계단의 숫자, 자신의 걸음걸이 속도를 수식으로 만드는 인간이다. 수업 종이 친 다음 정확히 10초 후에 교실 문턱에 발끝이 들어가는 걸음, 자폐 천재 수준의 재능을 학교 종소리에 낭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종이 친 후 10초는 우리들의 골든타임이다. 가끔씩 그 10초 사이에 생사를 넘나든 친구들도 있다.

재준과 내가 각자 자리로 슬라이딩하여 안착한 직후, 5층 기하와 벡터 교실의 앞문이 정확하게 열렸다. 50대 중반의 여선생님이 들어오신다. 검은 뿔테 안경, 흰머리와 검은머리가 섞여 은빛으로 보이는 단발머리, 입을 다물면 입술이 ^ 자로 고정되는 표정. 검은색 가디건과 검은색 정장 치마. 살짝 핏기 없는 얼굴색.

구글에서 「수학교사」를 검색하면 가장 위에 뜰 것 같은 모습이다. 별명은 하데스 여선. 이 시간이 시작되면, 우리들은 신들에게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는 벌을 받은 아틀라스의 어깨 무게를 실시간으로 체험한다.

창밖의 나무

다행히 나는 내 자리를 잘 잡아 두었다. 5층 수학교실 창가, 거기 앉으면 바로 옆에 보이는 나무가 하나 있다. 학교 건물 높이를 살짝 넘기는 고목. 누가 언제 심었는지 선배도, 선생님도 모른다. 잎사귀 끝이 학교 건물의 옥상 난간을 살짝 넘는다.

힘든 수학 시간 — 특히 기하와 벡터 시간에 가끔씩 그 나무를 바라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이 학교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자리. 가끔씩 향나무처럼 은은한 향기도 풍겨 준다. 수학 시간 중간엔 15분 정도 자기가 풀이를 하는 시간이 있는데, 안 풀리는 문제 앞에서 그 나무를 한참 멍하니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아이디어가 솟아오른다. 정말이다. 거짓말 같지만 정말이다.

얼마 전, 내가 가장 오래 근무하신 역사 선생님께 그 나무에 대해 물어봤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분은 살짝 귀찮아하는 표정을 짓더니, 아무 말 없이 메모지에 책 제목 하나를 적어 건네셨다. 한자로.

香政普通學校二百年神話史

— 향정보통학교이백년신화사 —

'이백년신화사'. 신화. 200년 된 보통학교에 무슨 신화가 있다고?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역사 선생님의 표정은 농담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던지신 한 마디가 마음에 걸렸다.

"읽기 전에는 도서관 사서한테 한 번 더 물어봐. 그 책은 빌릴 때마다 사서가 봐줘야 하거든."

왜? 라고 물으려는데 선생님은 이미 등을 돌리신 뒤였다.

"하천강… 창밖으로 기하와 벡터가 보이느냐?"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고, 뭔가가 내 옆에 서 있었다. 어쩌다 보니 또 멍을 때리고 있었다. 5교시, 그것도 수학에서도 악마의 영역으로 알려진 기하와 벡터 시간. 담당교사는 하데스 여선. 실수했다.

"…아… 저… 그게…"

하데스 여선은 핑크색으로 장식된 자신의 아이패드를 꺼내더니, 질의응답 전용 메신저에서 내 이름을 체크한 다음, 익숙한 손놀림으로 메시지 하나를 툭 보냈다. 보나마나 징벌성 문제다.

▸ 수학교사 → 하천강 (1)

좌표공간에서 구 x²+y²+z²=4 위를 움직이는 두 점 P, Q가 있다. 두 점 P, Q에서 평면 y=4에 내린 수선의 발을 각각 P₁, Q₁이라 하고, 평면 y+√3z+8=0에 내린 수선의 발을 각각 P₂, Q₂라 하자. 2|PQ|² − |P₁Q₁|² − |P₂Q₂|² 의 최댓값을 구하시오. (4점)

※ 내일까지 풀어와. 카페에서 베껴오면 미분해 버린다. 알려진 풀이 외 두 가지 더 사용할 것.

미분해 버린다고 하셨다. 이건 학생을 미적분의 영역으로 끌고 가서 정신적으로 분해해 버리겠다는 뜻이다. 21세기도 1/3이 지나가는데 왜 학교에서의 수학과 수학교사의 변화는 없는가. 차라리 저 도형이 지구본과 공간좌표계라면 좀 할만한데….

남은 수학 시간 내내, 저격수의 빨간 조준점이 내 이마에 머무르는 느낌을 받으면서 살았다. 종이 칠 때까지 나는 인간이 한 자세로 얼마나 오래 굳을 수 있는지를 실험했다.

생존을 확인한 후, 16년 전 모의평가에 출제됐다는 그 29번 문제를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늘 안에 해결해야 한다. 집중하기 위해서는 차가운 형광등이 깜빡이는 현대식 교실보다, 어딘가 모르게 고즈넉한 곳이 필요하다.

A002

학교 도서관은 이 학교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아날로그한 공간이다. 운영 자체는 VR과 MR로 돌아가지만, 도서관 안의 기물들은 대부분이 아주 오래된 것들이다. 천장이 높아서 면적에 비해 여유로워 보이고, 실내의 2/3은 책장이 빼곡한 서고, 1/3은 묵직한 목재 책상 세 개가 놓인 열람실이다.

사실 종이책은 이제 박물관 소장각이다. 사람들은 「뉴런기어」 2세대를 통해 텍스트를 뇌에 직접 다운로드 받는다. 정보의 보유 기간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긴 하지만, 그래도 꽤 보편화된 기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 위에 그려진 고지도(Old map)들은 여전히 인기가 많다. 「세계의 요약」이라는 지도의 기능은 어떻게 보면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도는 세 가지. 알 이드리시의 세계지도, TO지도, 그리고 천하도(天下圖). 셋 다 극초고해상도 데이터를 아이패드에 넣어 두었다. 고민이 있을 때 한번 열어 보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차분해진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 좋다.

사서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사서교사 경환 선생님은 도서 분류 라벨을 진득이 붙이고 계셨다. 그분의 이름은 「경환(景幻)」. 빛 경(景), 환영 환(幻). 이름부터가 어딘가 도서관과 어울린다.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알 수 없다. 학교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

"선생님, '향정보통학교이백년신화사' 어디 있을까요?"

경환 선생님은 잠시 라벨에서 손을 떼고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그 시선이 묘하게 길었다.

"…분류번호 000-A002를 찾아가 봐."

"네."

"…한 권 남아는 있으려나."

사서 선생님의 마지막 한 마디는 묘하게 작았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나는 그 말투가 못내 마음에 걸려서,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다 결국 서가 쪽으로 발을 옮겼다.

000번대 서가는 도서관의 가장 안쪽, 둥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있는 벽면 앞에 있었다. 책장마다 검은 바탕에 흰색 양각으로 분류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A001   [ ? ]   A003   A004   A005

A002가 없다.

A001과 A003 사이의 간격만 다른 책장들의 간격보다 살짝 — 정말 살짝 — 넓었다. 누가 한 사람 어깨너비만큼 책장을 떼어 놓고 그 사이를 비워둔 것 같은 그런 간격. 한눈에 봐도 오래된 나무 책장들이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책장 꼭대기에는 기하학적인 조각들이 올려져 있었다. 어떤 것은 정육면체였고, 어떤 것은 팔면체, 또 어떤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면체였다.

나는 책장 사이를 한 번 더 걸어보았다. 카멜레온이 눈알 굴리듯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분류번호를 스캔했다. A001, A003, A004, A005. A002는 없다. 다시 봐도 없다.

"…뭐가 문제일까."

A001과 A003 사이에 있었는데 사라진 걸까. 아니면 SF 라노벨에서 본 것처럼 뭔가 장치가 있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 마지막 종이 울렸다.

딩—댕—동—.

금일 학교 일정 종료. 이 학교는 점심시간 직후에 출석 체크를 마치고, 그 이후엔 각자 선택한 과목의 담당 선생님 수업을 듣고 바로 귀가하는 시스템이다. 내 경우엔 5교시 기하와 벡터가 마지막 수업이었으니, 이미 공식적으로는 하교 시간이다. 도서관에 와서 헤매는 사이에 한 시간이 그대로 흘렀다. 멍을 때리지만 않았어도 이 시간에 문제 풀이를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과제는 둘째 치고 책장 하나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더 신경 쓰였다.

이왕 삼천포로 빠진 김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도해 보기로 했다. 다시 A001 서가 앞으로 다가서는데 — 그때, 슬슬 해가 기울기 시작했는지, 도서관의 둥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비스듬한 빛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A001과 A003 책장 사이의 빈 공간에, 천천히 그림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석양빛이 책장 꼭대기의 기하학적 조각들을 통과하면서 만들어내는 그림자였다. 처음엔 형체를 이루지 못하고 흐릿했지만, 빛의 각도가 조금씩 달라지는 사이에 — 그림자는 점점 또렷해졌다.

바닥에. 책장 사이의 빈 바닥에. A 0 0 2 — 라는 글자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확증편향일 수도 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서 그렇게 본 것일 수도.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또렷했다. 너무나 정확했다. 너무나 — 그쪽이 의도한 것 같았다.

'…핫. 이거, 너무 뻔한 전개 아닌가? A002 위에 발을 디디면 이세계로 워프하는 거야?'

반쯤 농담으로 생각하면서, 나는 그 그림자 위에 한 발짝을 내디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이거…"

허탈해진 마음에 한숨을 한 번 쉬는 사이, 태양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고 있었다. A002라는 그림자는 태양의 각도가 바뀌어 감에 따라 바닥에서 A001 서가 쪽으로 천천히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 그림자는 두꺼운 책 한 권의 책 등(背)에서 정확하게 멈췄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그림자는 0.5초 단위로 점점 희미해져 가기 시작했다.

"…설마. 저 책인가?"

나는 희미해져 가는 그림자가 머무른 위치의 책 한 권을 빼들었다. 책을 들어올리는 순간, 그림자는 마치 자기 임무를 다 마쳤다는 듯 —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 손에 들린 책은 탁한 흰색의 하드커버. 두께는 어림잡아 1500페이지가 넘어 보였다. 표지에는 한자로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香政普通學校

二百年神話史

바로 그 책이었다. 역사 선생님이 메모지에 적어 주셨던, 사서 선생님이 마지막에 작은 목소리로 "한 권 남아는 있으려나"라고 중얼거렸던 — 바로 그 책.

묘하게 따뜻했다. 책의 표지가. 마치 누군가가 방금 전까지 쥐고 있었던 것처럼.

조심스럽게 첫 페이지를 펼치려는 순간, 등 뒤에서 사서 선생님의 책상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 그리고 문이 닫히는 소리. 누군가 도서관을 나가는 소리.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사서 책상은 비어 있었다.

사서 선생님이 사라진 것이다. 한낮의 도서관, 종이 친 직후의 가장 사람이 많아야 할 시간에. 그분은 내 시야에서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처럼 — 사라져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사서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책상 위에는 — 아까는 분명 없었던 메모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갑자기 갈 곳이 생겨서, 내일부터 한 달간 휴가를 냈습니다.

먼저 퇴근하니, 앞에 책의 대출번호를 적고 빌려 가세요.

한 달 후에 반납 받습니다.

한 달 후에는 꼭 반납하셔야 합니다.

꼭… 반드시…

2032. 5. 27.   사서교사 — 경환

메모를 읽는 동안, 내 손에 들린 책의 표지가 — 정말 잠깐 — 한 번 따뜻하게 두근거렸다.

아주 작게. 하지만 분명히.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도서관 창문 너머로 마지막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면서 무지갯빛으로 산란된 그 빛은, 내 손에 들린 책의 표지 위에 둥근 원의 모양을 그렸다.

원의 한가운데에 — 산이, 그리고 산을 둘러싼 바다가, 그리고 바다 너머의 또 다른 대륙들이 — 잠깐 동안 떠올랐다가, 곧 사라졌다.

천하도(天下圖).

내가 가장 사랑하는 지도가, 잠깐 동안 — 표지 위에 살아 있었다.

— 第一話 끝 —

▸ 第二話 「이백년의 책」으로 이어집니다.

▣ 작가 노트

"천하도(天下圖)"는 17~19세기 조선에서 만들어진 한국 고유의 관념 세계지도입니다. 산해경(山海經)을 기반으로 하며, 중심에 부주산을 두고 9중 원환 구조로 세계를 표현합니다. 본 작품은 이 천하도를 모티프로 한 픽션입니다.

반응형